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 이글스/역사 (문단 편집) === 2002 시즌 === 2002년에는 [[정민철]]이 요미우리 퇴단 후 국내로 복귀했고, 백전노장이던 [[송진우(야구)|송진우]]가 220이닝을 소화하며 [[선동열]]의 프로야구 최다승인 146승을 경신하고 150승 이상을 달성했으며 시즌 18승을 거두며 커리어 유일한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타선에서는 [[송지만]]이 38홈런-104타점을 기록하고 [[이영우]]와 데이비스 역시 24홈런과 21홈런, 그리고 두산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공격형 포수 [[이도형]]도 16홈런으로 활약해 팀 타선을 이끌었고 주전 유격수 [[백재호]]와 제대한 주전 2루수 [[임수민(야구선수)|임수민]]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민철이 에이스가 아닌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장종훈]]은 프로야구 최초의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 기록을 세웠지만 급격히 노쇠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김태균]]은 라식수술 후유증과 2년차 징크스를 겪고 2001 시즌에 활약했던 김수연과 김종석도 부진해 7위로 추락, 이광환 감독은 시즌 후반부터 거의 태업에 가까운 운영을 선보이다가 시즌 후 사임한다. 59승5무69패로 7위로 마쳤는데 이해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패 타이인 97패와 승률 0.265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최하위 롯데와의 승수는 24승, 승률은 0.196 차이가 났다. 월드컵이 열렸던 6월 한 달 동안 4승15패로 월간 3승에 그친 롯데 다음으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 시즌 전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위안거리는 [[이범호]]가 데뷔 3년만에 프로 첫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점이었다. 2001 시즌 무려 6명의 외국인이 한 시즌에 출전하며 외국인 교체는 1번밖에 할 수 없는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 해 역시 외국인 잔혹사를 겪었다. 시즌 전 [[브랜든 리스]]를 대체할 외국인으로 프란시스코 캄포스를 낙점했으나 밀워키와의 이중계약으로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레닌 피코타]]를 데려왔다. 피코타는 확실한 보직 없이 선발등판 8경기, 구원등판 34경기를 소화하며 6승6패14세이브 ERA 3.51의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3.39의 WAR로 7.18의 송진우에 이어 이해 한화 투수 WAR 2위였다. 또다른 외국인인 내야수 아모리 가르시아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강한 어깨, 주루까지 갖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원래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유격수로 뛰다가 시즌 개막과 함께 발목부상을 당하고 무리하여 0.260의 타율과 2홈런 8타점의 초라한 성적으로 중도 퇴출되었다. 가르시아를 퇴출시키고 데려온 새 외국인 투수 댄 세라피니는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에 맞지 않아 한국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는걸로 밝혀졌다. 이는 구단이 까맣게 몰라 구단 행정력 부재를 드러냈다.[* 한화 프런트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으며, 세라피니는 선수단과 상견례까지 했었다.][* 세라피니는 2000시즌 9월 이후까지 피츠버그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장하여 '2000시즌 9월 1일 ~ 2001시즌 9월 1일' 이후 확대 엔트리에 등록된 선수는 계약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이 있었다.][* 먼 훗날인 2023년, 장인을 살해하고 장모를 다치게 한 것으로 드러나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 충격을 안겨줬다.] 결국 1998 시즌에 삼성 라이온즈 마무리로 활약했던 [[호세 파라]]를 영입했지만 파라는 3승1패4세이브 ERA 6.00으로 기대 이하의 모습만을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